2편 배흘림기둥과 주심포 양식: 무량수전에서 배우는 시각적 안정감의 비밀

 경북 영주 봉황산 자락에 자리한 부석사 무량수전 앞마당에 서면 누구나 묘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건물이 거대하거나 화려해서가 아닙니다. 장엄한 소백산맥 능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 있는 목조건물 한 채가 주는 단정하면서도 묵직한 안정감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흘림기둥’과 ‘주심포 양식’이라는 단어를 기계적으로 외울 때는 전혀 와닿지 않았던 공간의 매력이, 현장에서 기둥을 직접 손으로 쓸어보고 한 걸음 물러서서 처마를 올려다보는 순간 비로소 선명하게 이해되었습니다. 옛 장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착시까지 계산해 완성한 시각적 균형의 비밀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무량수전의 기둥을 유심히 바라보면 아래에서 위로 곧게 뻗은 일직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기둥의 밑동에서부터 서서히 굵어지다가 지상에서 약 3분의 1 지점에서 가장 두꺼워진 후, 머리 부분으로 올라가면서 다시 완만하게 좁아집니다. 이를 ‘배흘림(Entasis)’ 기법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의 눈은 높고 곧은 수직 기둥을 올려다볼 때 착시 현상을 일으킵니다. 기둥을 완벽한 원통형이나 직선으로 깎아 세우면, 인간의 시지각 특성상 기둥의 중간 부분이 오목하게 안으로 파여 들어가 보입니다. 이로 인해 거대한 지붕의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곧 부러질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부석사를 지은 목수는 기둥의 배를 일부러 불룩하게 살려냄으로써 이 광학적 착시를 교정했습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비로소 완벽한 수직 기둥처럼 인식되도록 만든 고도의 시각 보정술입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도리아식 기둥에서도 발견되는 이 보정 원리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한반도의 산사 목조건축에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구현되어 있다는 점은 볼 때마다 깊은 경외감을 자아냅니다.



배흘림이 기둥 자체의 착시를 잡는 기술이라면, 건물 전체의 균형을 완성하는 데는 두 가지 보이지 않는 규칙이 더해집니다.


  1. 안쏠림(오금법) 건물 외곽의 기둥들을 수직으로 똑바로 세우면, 지붕 끝이 양옆으로 뻗어나가는 시각적 무게 때문에 기둥이 바깥으로 벌어져 쓰러질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바깥쪽 기둥들의 상단을 건물 중심 쪽으로 아주 미세하게 기울여 세웠습니다. 안쪽으로 모아주는 시각적 장치 덕분에 건물이 지면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듯한 인상을 줍니다.

  2. 귀솟음 건물 모서리에 위치한 기둥(우주)을 가운데 기둥보다 약간 더 높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수평 처마선이 길게 이어지면 사람의 눈에는 양 끝 모서리가 아래로 처져 보이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모서리 기둥의 키를 살짝 키워 처마 끝을 들어 올림으로써 건물 전체의 수평선이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유지되도록 배려했습니다.



기둥 상부를 올려다보면 지붕을 받치는 목재 조각인 ‘공포’가 기둥 바로 위에만 정갈하게 얹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주심포(柱心包)’ 양식입니다.


조선 후기 궁궐이나 화려한 사찰에서 흔히 보이는 ‘다포(多包)’ 양식은 기둥과 기둥 사이 빈 공간에도 촘촘하게 공포를 배치하여 장식성과 웅장함을 극대화합니다. 반면 주심포는 구조적 힘이 집중되는 기둥 머리에만 결구 부재를 배치합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벽면은 깨끗한 여백으로 비워두기 때문에, 복잡한 장식 대신 단정한 목재의 비례와 결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화려한 기교를 덜어낸 자리에는 담백한 구조미가 남습니다. 기둥 위의 절제된 공포와 완만하게 솟은 배흘림의 곡선이 만나 무량수전 특유의 편안하고 고요한 비례를 완성합니다.



부석사나 다른 전통 고건축을 찾으셨을 때 다음 동선으로 건물을 살펴보시면 구조의 묘미를 온전히 체감하실 수 있습니다.


  • 기둥에 뺨 대고 올려다보기: 기둥 밑동에 몸을 바짝 붙이고 위를 올려다보면 허리 부분이 불룩하게 솟았다가 좁아지는 곡률을 손과 눈으로 직접 실감할 수 있습니다.

  • 정면 20보 뒤로 물러서기: 건물 정면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바라보면, 기둥들의 안쏠림과 지붕선이 만들어내는 완벽한 좌우 대칭과 수평의 조화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 기둥 사이 여백 바라보기: 화려한 단청이 퇴색되어 드러난 나뭇결과 기둥 사이 하얀 벽면이 주는 여백의 안정감을 천천히 호흡해 봅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시각적 한계까지 끌어안았던 고려 목수의 섬세한 배려는 수백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핵심 요약]

  • 배흘림기둥은 높은 수직 기둥의 중간이 오목하게 보이는 착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기둥의 중앙부를 불룩하게 다듬은 시각 보정 기법입니다.

  • 안쏠림과 귀솟음은 처마의 무게로 인해 건물이 벌어지거나 처져 보이는 것을 막아주는 전통 건축의 정밀한 광학적 설계입니다.

  • 주심포 양식은 기둥 위에만 공포를 얹고 사이 벽면을 비워둠으로써 장식의 과장 없이 목구조 본연의 담백한 비례미를 극대화합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3편에서는 화려한 궁궐의 격식에서 벗어나 사대부 가옥의 소박한 선을 품은 공간, 창덕궁 후원 낙선재(樂善齋)에 깃든 비운의 역사와 단청 없는 백골집의 절제미를 다룹니다.


[독자 소통]

오래된 고건축 앞에 섰을 때 유독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비례감이 안정적이라고 느껴졌던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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